지난 2024년 4월 8일은 574년 전 이날 훈민정음을 창제한 조선의 네 번째 국왕인 세종이 1450년 음력 2월 17일 재위 32년 되던 향년 52세로 한성부 영응대군 사저에서 승하하신 날이다.
조선 왕조에서 처음으로 개국 이후 태어난 임금이면서, 종신(終身)한 임금 세종에 대해서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실록 총서’에는 다음과 같이 20자의 한자로 그를 평가하고 있다.
英明剛果 沈毅重厚 寬裕仁慈 恭儉孝友 出於天性 (영명강과 심의중후 관유인자 공검효우 출어천성)
영민하고 총명했으며 강인하고 과감했다. 무거우며 굳세었고 점잖고 두터웠다. 크고 너그러웠으며 어질고, 사랑했다. 공손하고 검소하며 효도하고 우애함은 태어날 때부터 그러했다.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 왕대리에 있는 세종을 모신 능은 영릉(英陵)으로 아내인 소헌왕후와 합장된 조선 역사상 최초의 합장릉이다.
원래 세종은 아버지 태종의 헌릉(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근처에 묻히고 싶어 해서 먼저 세상을 뜬 소헌왕후를 태종의 능 구역 서쪽에 장사 지냈고 본인이 승하한 후에는 그곳에 합장되었다.
훈민정음이 창제되었다는 1차 반포가 있기 10개월 전인 1443년 2월 세종은 자신의 수릉(壽陵 : 임금이 죽기 전에 미리 만들어 두는 무덤)을 정할 당시 그곳의 형세와 지리가 어떤지 미리 알아보라고 지시한다.
당대의 풍수가로 이름난 지관 최양선은 태종의 묘 옆에 있는 수릉이 들어설 묏자리의 형세를 꼼꼼히 살펴본 뒤 “絶嗣孫長子(절사손장자)”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낸다. ‘절사’란 대를 잇는 자식이 끊긴다는 것이고, ‘손장자’란 맏아들을 잃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후손이 끊어지고 맏아들을 잃는 무서운 자리’라는 것이다.
이때 땅을 살피러 간 왕족은 바로 수양대군 즉, 훗날의 세조였고 배종한 신하 중 한 명인 정인지는 최양선의 섬뜩한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며 ‘이런 요망한 소리를 하는 자를 처단해야 한다.’라고 했지만, 세종은 꼭 아버지 태종 곁에 묻히고 싶었기 때문에 그냥 자신을 향한 충언 정도로 받아들이며 뜻을 꺾지 않고 넘어갔다.
그래서 1450년 음력 2월 17일 세종은 결국 뜻대로 태종의 묘인 헌릉 옆에 묻히게 된다.
그렇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최양선이 주장했던 것처럼 세종의 장남 문종이 즉위 2년 만에 승하했고, 문종의 장남 단종 또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으며, 세조의 장남 의경 세자와 예종의 장남 인성 대군도 요절했다.
이 때문에 예종은 풍수가들의 조언에 따라서 할아버지인 세종 내외를 여주로 이장하기로 하는데 그 당시 영릉 자리에는 우의정을 지낸 이인손(李仁孫)의 무덤이 있었다.
무덤 자리를 양보해달라는 예종의 청을 받아들인 이인손의 후손들이 묘를 파자 ‘이 자리에서 연을 높이 날린 다음 줄을 끊어 연이 떨어지는 자리로 이장하라.’라는 지석이 나왔고 후손들이 이를 따르자, 연이 떨어진 자리도 명당이어서 가문이 계속 번창했다고 한다.
영릉 이장은 세조 때부터 논의되다 1469년(예종 1년)에 천장하여 현재 자리로 옮겼는데, 이 자리가 천하의 대명당으로 풍수가들 사이에서는 평판이 대단한 자리이다.
태조의 건원릉, 단종의 장릉과 더불어 3대 명당으로 손꼽히는 자리로, 일설에는 세종 같은 성인을 이러한 대명당에 모셨기 때문에 조선 왕조의 수명이 최소 100여 년은 연장되었다는 소위 ‘영릉가백년(英陵加百年)’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영릉은 건원릉(태조), 후릉(정종), 헌릉(태종)에 세워진 신도비(神道碑, 일종의 추모비)가 조선의 역대 왕릉에서 마지막으로 신도비가 세워진 능이기도 하다. 왜냐면 세조 때부터는 세조 본인이 이런 걸 만들지 말라고 해서 그 이후의 왕들은 신도비가 없기 때문이다.
“세종은 족보로 된 임금이 아니다. 전주이씨의 임금이 아니라 하늘이 낸 임금이었다. 그가 훈민정음을 짓고 모든 책의 언해를 만든 것은 모두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진정으로 민족 걱정을 한 임금이요, 진정으로 인생 걱정을 한 임금이다. 어쩌면 그런 어진 마음이 이 역사에도 났을까? ” 함석헌 선생의 표현을 빌려 한민족의 역사에 가장 큰 발자국을 남기신 세종을 추모한다.
사단법인 훈민정음기념사업회 이사장 박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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