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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일보

박재성 칼럼(29) 지상과 지하 모두 오자로 된 부끄러운 훈민정음 이야기

이금로 대표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8:28]

박재성 칼럼(29) 지상과 지하 모두 오자로 된 부끄러운 훈민정음 이야기

이금로 대표기자 | 입력 : 2024/06/08 [08:28]

광화문 광장 지상의 훈민정음 어제 서문의 오류를 지난 호에서 지적한 글을 투고한 후 다시 광화문을 찾았다. 세종대왕 동상 뒤편에 지하로 들어가는 계단을 통해서 지하 2층에 있는 세종이야기 전시장으로 내려갔다.

 

세종이야기라고 크게 쓴 현판을 지나면 본 전시장으로 통하는 대리석으로 조성된 복도가 나온다. 그 세종이야기 현판 아래에서 중앙 전시장 쪽을 바라보는 복도 오른쪽 벽면에도 세종 어제 서문이 대리석에 새겨져 있기에 본능적으로 내용을 살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역시 나로 바뀐 순간이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나 보다. 그 대리석에도 지상의 훈민정음 비문과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홉 자의 오자를 그대로 새겨놓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훈민정음이라 하면 떠올리는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로 시작되는 문장의 원문을 소개하면서 오자와 비교해서 제시한다.

 

솅조ᇰᅌᅥᆼ졩훈민져ᇰᅙᅳᆷ / 나랏말ᄊᆞ미듀ᇰ귁에달아문ᄍᆞᆼ와로서르ᄉᆞᄆᆞᆺ디아니ᄒᆞᆯᄊᆡ이런젼ᄎᆞ로어린ᄇᆡᆨ셔ᇰ이니르고져호ᇙ배이셔도ᄆᆞᄎᆞᆷ내제ᄠᅳ들시러펴디몯ᄒᆞᇙ노미하니라내이ᄅᆞᆯ윙ᄒᆞ야어엿비너겨새로스믈여듧ᄍᆞᆼᄅᆞᆯᄆᆡᇰᄀᆞ노니사ᄅᆞᆷ마다ᄒᆡᅇᅧ수ᄫᅵ니겨날로ᄡᅮ메뼌ᅙᅡᆫ킈ᄒᆞ고져ᄒᆞᇙᄯᆞᄅᆞ미니라 <언해본 어제서문 원문(방점 제거본)>

 

 

 

위에서 원으로 표시한 오자는 훈민정음해례본의 합자해에서 중요하게 다룬 창제원리, , ‘初中終三聲 合而成字(초중종삼성, 합이성자)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의 3성은 어울려야 글자를 이룬다.’라는 기본 원리에 따라 다음과 같이 9곳의 오자를 바로잡는다.

 

() ᅌᅥᇰ() 졔ᇰ() 져ᇰ()

듀ᇰ() ᄍᆞᄍᆞᆼ() 셔ᇰ() ()

ᄍᆞᄍᆞᆼ()

 

한국관광공사의 홈페이지 대한민국 구-석구석( https://korean.visitkorea.or.kr)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도심 속에서 생생한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 세종이야기, 충무공 이야기 전시장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운영하는 생생한 역사, 문화공간으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조선 4대 임금 세종대왕과 임진왜란 당시 큰 공을 세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전시관이다.

 

세종이야기 전시장은 2009109일 한글날을 맞아 개관하였고, (중략) 1. 인간, 세종 2. 민본사상 3. 한글 창제 4. 과학과 예술 5. 군사정책 6. 한글도서관 총 6개의 전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중략) 연간 약 15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서울 관광 명소로, 다양한 체험 및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도심 속에서 생생한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안내 글처럼 이곳은 연간 약 150만 명이 방문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서울 관광 명소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 공간인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설치한 훈민정음언해 서문 기념비의 오자도 부끄럽기 그지없는데, 이번에는 지하의 세종이야기 전시장 입구 벽면의 대리석 부조에 새긴 어제 서문에도 아홉 자나 오자가 있다. 또 한 가지 위 안내 글에서 짚고 넘어갈 내용이 있다. “세종이야기 전시장은 1. 인간, 세종 2. 민본사상 3. 한글 창제 4. 과학과 예술 5. 군사정책 6. 한글도서관 총 6개의 전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고라는 글에서 한글 창제라고 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 102>의 세종 25(1443)년 음력 1230일 경술 2번째 기사에 기록되기를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를 모방하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만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라고 57자의 짧은 문장으로 최초의 훈민정음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생생한 역사를 무시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분명하게 임금(세종)이 친히 지었고, 28자이며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이루어지는 이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만 전환하는 것이 무궁한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이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훈민정음을 이르는 또 다른 한글이라는 이름은 1940년에야 발견된 <훈민정음해례본>의 존재조차도 알지 못한 상황에서 1912년경 주시경이라는 젊은 학자가 작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세종이야기 전시장의 주제만큼은 사실(史實)에 바탕을 두어 한글 창제가 아니라, 훈민정음 창제라고 안내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바로잡지 않으면 교과서 내용 중 중세국어론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훈민정음 어제 서문을 머리를 싸매고 열심히 외웠을 학생들은 지상의 세종대왕 동상 앞의 어제 서문이나 지하의 세종이야기 기념관 벽면에 새겨진 오류투성이인 나랏말싸미~’의 내용을 보고 혼란스러워할 것이라 염려스러워진다.

 

 

사단법인 훈민정음기념사업회 이사장 박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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