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창제한 문자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새롭게 만든 문자의 이름에 ‘글자’라는 뜻의 ‘字(글자 자)’가 들어가지 않고 ‘바른 소리’라는 ‘정음(正音)’이라고 하였을까?
‘소리’라는 뜻을 가진 대표적인 한자는 ‘聲(소리 성)’과 ‘音(소리 음)’이 있으므로 ‘훈민정성(訓民正聲)’이라고 해도 될 것인데, 音 자를 써서 訓民正音이라고 하였다.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音이나 聲이라는 한자를 자원 풀이로 시작하는 것이 해답을 구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후한 때의 ‘허신’은 그의 명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音(음)은 ‘聲生於心有節於外謂之音(성생어심유절어외위지음)’”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즉, ‘소리가 마음에 있는 것을 매듭지어 밖으로 고(告)하는 것이 音이라고 한다.’라고 풀이하였다.
그리고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 해석 사전인 ‘이아(爾雅)’는 “聲(성)은 ‘物體振動時所産生的能引起聽覺的波(물체진동시소산생적능인기청각적파)’”라고 설명해 놓았다. 즉, ‘물체의 진동 때문에 생긴 음파가 귀청을 울리어 귀에 들리는 것이 聲이라고 한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다시 말해 音은 ‘음성 기호로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행위로 말을 통해서 나오는 소리’라고 정의하는데, 이 한자를 파자(破字 : 한자의 자획을 풀어 나눠 맞추는 학습법)하면 ‘입[口]안의 혓바닥[一] 위치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고 이에 따라 글자나 악보로 표현할[立] 수 있는 소리’를 뜻하는 한자이다.
그리고 聲은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라고 정의하는데, 파자하면 ‘악기[声]를 두들겨[殳] 나는 소리처럼 귀[耳]에 들리는 모든 소리’를 뜻하는 한자이다.
또 ‘도덕경’에서는 '(조음기관의 인위적 개입을 거친) 음성에 가까운 개념을 지칭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듯이 대체로 '글자나 악보로 옮겨 적을 수 있는 소리'를 音이라고 한다.
실제로 ‘훈민정음해례본’을 자세히 살펴보면, 〈제자해(制字解)〉, 〈초성해(初聲解)〉, 〈중성해(中聲解)〉, 〈종성해(終聲解)〉, 〈합자해(合字解)〉, 〈용자례(用字例)〉에서 보이는 것처럼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의 제목은 聲 자를 쓰고 있다.
그러나 세종이 직접 쓴 서문에서는 ‘국지어음(國之語音)’이라고 하여 ‘나라의 말소리’라고 시작하였으나, 28자 자모음의 음가와 운용법을 설명하는 〈예의편〉에서는 ‘牙舌脣齒喉(아설순치후)’의 자음(子音)은 音 자로 표기했지만, 한자의 전래 자음(字音)은 ‘처음 피어나는 소리[初發聲(초발성)]’라는 의미로 모두 聲 자로 표현하면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세종대왕은 새로 만든 문자의 이름을 ‘백성들 마음에 있는 것을 매듭지어 바르게 밖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해 만든 글자’라는 의미를 담아 ‘訓民正音’이라고 이름하였을 것이다.
고대 중국의 예(禮)에 관한 기록과 해설을 정리한 유교 경전으로 조선 시대 군왕의 필독서였던 ‘예기(禮記)’의 내용을 세종의 마음으로 음미해 본다.
“무릇 音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樂(악)은 인륜의 이치와 통하는 것이라. 이런 까닭으로 聲을 알고 音을 알지 못하는 것은 禽獸(금수)이고, 音을 알고 樂을 알지 못하는 자는 무리라. 오직 군자만이 능히 樂을 앎이 되니라. 그러므로 聲을 살펴 音을 알고, 音을 살펴 樂을 알고, 樂을 살펴 정사를 아니, 다스리는 도가 갖춰지느라. 이런 까닭으로 聲을 알지 못하는 자는 더불어 音을 알지 못하고, 音을 알지 못하는 자는 더불어 樂을 알지 못할 것이나 樂을 안다면 禮(예)에 거의 가까우니라. 예악을 다 얻은 이를 ‘덕(德)이 있다’라고 이르니, 德은 얻음이니라.”
사단법인 훈민정음기념사업회 이사장 박 재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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