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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일보

박재성 칼럼(44) 훈민정음에 담긴 세계적 창의성

이금로 대표기자 | 기사입력 2024/09/21 [09:01]

박재성 칼럼(44) 훈민정음에 담긴 세계적 창의성

이금로 대표기자 | 입력 : 2024/09/21 [09:01]

세상에는 7천 개 이상의 온갖 언어가 존재한다. 많은 민족과 국가가 자기들의 언어를 기록하기 위해 나름의 글자를 만들어 쓰고 있다. 그만큼 글자로 표현한 문자의 방식도 다양하다.

 

사물의 모양을 그대로 본떠서 그려 넣는 고대 이집트의 신성문자,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라틴문자와 그다음으로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아랍 문자, 아무리 복잡한 요소도 하나의 칸 안에 집어넣어 글자를 만드는 중국의 한자, 진흙판에 쐐기 모양을 찍어 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와 같이 창의적인 글자들이 많다.

 

그러나 글자를 만들어 낸 창제자와 창제 연도와 창제 원리와 과정이 명확하게 밝혀진 문자는 훈민정음이 유일하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을 가진 훈민정음의 다른 이름은 언문이었다. 평민이 쓰는 글자라는 뜻이다. 훈민정음은 이후 줄여서 정음이라고도 불렀다가 1910년대에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훈민정음해례본은 세종 대왕이 직접 사용법을 설명한 예의와 집현전 학자들이 창제 원리를 설명한 해례로 구성된다. 그러나 1940년 경상북도 안동의 어느 고택에서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에는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만이 나돌았다.

 

특히 일제 강점기 때는 격자무늬로 돼 있는 창살을 보다가 ㄱ, , , ㅂ의 모양을 떠올렸다거나 인도와 몽골의 고대 글자에서 그대로 가져왔다는 주장이 나돌았다.

 

그러나 훈민정음해례본에는 자음과 모음은 왜 완전히 다르게 생겼는지, ㄱ은 왜 꺾인 모양인지, 모음은 왜 조합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등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과정과 원리 속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엄밀한 법칙과 획기적인 창의성이 담겨있었을 뿐만 아니라 창제 당시 최만리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이 왜 그토록 거센 반대를 해야만 했던지 모든 의문이 풀렸다.

 

훈민정음을 만들기 전까지 한자를 사용해 왔다. 실제 사물의 모양을 그대로 그려낸 상형문자에서 출발한 한자는 모양소리이라는 3가지 개념을 한데 엮어서 하나의 글자로 만든 체계를 가지고 있다.

 

상형, 지사, 회의는 모양과 뜻이 일치하고 형성, 가차는 소리와 뜻이 일치한다. 그러나 모양이 소리와 일치하는 경우는 없었다. 글자의 모양만 가지고 발음을 알아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훈민정음이 창제되면서 자음과 모음 모두가 입안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모양과 소리를 일치시켜 만든 완전한 표음문자 즉, 음소문자 체계가 탄생했다.

 

최만리는 언문 창제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용음합자는 옛것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용음합자(用音合字)’소리를 이용해서 글자를 만든다.’라는 뜻이다. 모양과 소리를 일치시키는 이 방식은 한자에는 존재한 적 없으므로 성리학자로서 반대한 것이다. 훈민정음의 원리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훈민정음이 다른 문자와 더욱 차별화되는 점은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한 음절을 하나의 글자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음절의 첫 자음인 초성’, 모음인 중성’, 끝 자음인 종성을 한 칸에 담아서 글씨를 쓰도록 한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획기적인 발상이다.

 

훈민정음 덕분에 사람들은 한자처럼 글자에 담긴 뜻을 생각하는 일 없이 주변의 소리를 그대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정인지가 훈민정음해례의 후서를 작성하면서 바람 소리, 학과 닭의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도 모두 표현할 수 있다라고 기록한 것도 한자의 체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당시 명나라의 영락제가 펴낸 성리대전은 권 7부터 권 13까지 일곱 권이 음성학과 관련된 내용이다. 불교가 전래하면서 범어(梵語)’라 불리던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를 한자로 기록하는 방법이 함께 논의됐고,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음성학의 수준도 높아졌다.

 

그러나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새로운 문자 체계를 만들어 낸 나라는 조선이 유일하다. 게다가 왕이 친히 완전한 표음문자 체계를 만들고 전파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세종 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업적은 만세에 칭송받아 마땅하다.

 

▲ 훈민정음기념사업회 이사장 박재성    

사단법인 훈민정음기념사업회 이사장 박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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