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경기남일보

박재성 칼럼(41) 훈민정음 창제의 부당함을 아뢴 최만리

이금로 대표기자 | 기사입력 2024/08/31 [21:52]

박재성 칼럼(41) 훈민정음 창제의 부당함을 아뢴 최만리

이금로 대표기자 | 입력 : 2024/08/31 [21:52]

수십 년 후에는 문자를 아는 자가 반드시 적어져서, 비록 언문으로써 능히 이사를 집행한다고 할지라도, 성현의 문자를 알지 못하고 배우지 않아서 담을 대하는 것처럼 사리의 옳고 그름에 어두울 것이오니, 언문에만 능숙한들 장차 무엇에 쓸 것이옵니까. 우리나라에서 오래 쌓아 내려온 우문의 교화가 점차로 땅을 쓸어버린 듯이 없어질까 두렵습니다.

 

전에는 이두가 비록 문자 밖의 것이 아닐지라도 유식한 사람은 오히려 야비하게 여겨 이문으로써 바꾸려고 생각하였는데, 하물며 언문은 문자와 조금도 관련됨이 없고 오로지 시골의 상말을 쓴 것이겠습니까.

 

가령 언문이 전조 때부터 있었다 하여도 오늘의 문명한 정치에 변로지도 하려는 뜻으로서 오히려 그대로 물려받을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고쳐 새롭게 하자고 의논하는 자가 있을 것으로서 이는 환하게 알 수 있는 이치이옵니다.

 

옛것을 싫어하고 새것을 좋아하는 것은 고금에 통한 우환 이온데, 이번의 언문은 새롭고 기이한 한 가지 기예에 지나지 못한 것으로서, 학문에 방해됨이 있고 정치에 유익함이 없으므로, 아무리 되풀이하여 생각하여도 그 옳은 것을 볼 수 없사옵니다.”

 

이 글은 세종대왕이 144312월 훈민정음을 창제하자, 최만리가 신석조, 김문, 하위지, 정창손 등 집현전 내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하는 학자들과 함께 연명으로 훈민정음 창제의 부당함을 아뢴 상소문 일부분이다.

 

이들은 이 상소에서 중국과 다른 문자를 만드는 것은 사대모화에 어긋나며, 스스로 이적이 되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 이두는 한자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되지만 언문은 그렇지 못해 유익함이 없다는 점, 널리 의견을 묻지 않고 갑자기 이 배 10여 명에게 언문을 가르쳐 고인이 이미 이룬 운서를 고쳐 인쇄하려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다는 점, 동궁이 언문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 등 반대의 이유 6가지를 제시했다.

 

최만리는 이때 상소를 올린 집현전 학자들의 대표 격이었는데, 고려 시대 해동공자로 불리던 최충의 12대손이며 하()의 아들이다.

 

1419(세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그 이듬해 집현전 박사로 임명되었다. 그 뒤 집현전 학사를 거쳐 집현전의 실무책임자인 부제학으로서 14차에 걸쳐 상소를 올릴 정도로 부정과 타협을 모르는 깨끗한 관원으로서 일관하였으며 진퇴가 뚜렷한 최만리는 훈민정음이 완성될 때까지 세종의 뜻을 잘 받들어 반대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의 한자음이 체계 없이 사용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비밀리에 궁중의 의사 청에 최항 이하 집현전 소장학사와 동궁 등을 참가시켜 원나라의 웅충이 엮은 고금운회거요의 자음을 언문으로 달아 명나라의 홍무정운체계에 맞도록 새 운서를 편찬하여 당시 한자음을 개혁하려고 한 것이었는데 집현전의 중진 학자들과 함께 그 유명한 언문 반대 상소문을 올렸다.

 

이 상소문은 여러 학사의 합작으로 조목에 따라서는 언문 창제의 불필요성, 언문의 무용론을 주장한 것으로 사대주의적 성향이 짙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그 진의는 세종의 한자음 개혁에 반대한 것이 된다.

 

, 세종의 최만리에 대한 친국내용을 보면, “네가 운서를 아느냐? 사성 칠음에 자모가 몇이나 있느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냐.”라고 한 것을 보면 최만리 등의 상소는 고금운회거요의 번역 사업에 이은 동국정운의 사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최만리가 소두(疏頭)가 되어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반대 상소를 올린 1444년 음력 220일을 그레고리력을 적용하여 양력으로 환산하면 1444318일이 된다. 이 문제로 세종의 노여움을 사 바로 그날 친국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다음 날 석방되어 복직되었으나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14451023일 생을 마감했다.

 

 

사단법인 훈민정음기념사업회 이사장 박 재 성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