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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일보

[인터뷰] 손창록 풍수지리학 박사의 풍수 이야기, 국립현충원과 창빈안씨 묘

이금로 대표기자 | 기사입력 2024/05/12 [08:32]

[인터뷰] 손창록 풍수지리학 박사의 풍수 이야기, 국립현충원과 창빈안씨 묘

이금로 대표기자 | 입력 : 2024/05/12 [08:32]

명당 중의 명당, 역대 대통령 4명과 국가유공자들이 창빈안씨 호위하는 형국

 

국립현충원 보통 동작동 국립묘지라는 표현으로 더 익숙한 곳,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국가유공자들이 잠들어 있다.

 

19557국군 묘지로 조성되었다가 1965년 국립묘지로 승격돼 군인이 아닌 유공자들도 안장 자격을 얻게 된다.

 

고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등 전직 대통령과 각계 저명인사들도 묻혀 있다

 

현충원은 그런 남다른 의미를 가진 만큼, 국가에 충성을 약속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관악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한강과 만나는 곳에 있는 현충원, 셀 수 없이 많은 묘지 중 국가유공자라는 원래 취지와는 전혀 다른 묘지가 하나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선 시대부터 있었던 오래된 묘지다. 바로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 묘다. 동작동 현충원에서 최고 명당으로 알려진 묘().

 

▲ 창빈안씨 안내 표지석. 이금로 기자    

 

경내 한가운데쯤, 이승만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 사이에 있는 주차장에 창빈안씨 묘역이란 안내표지가 있다. 여기서 30m쯤 올라가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무덤 하나가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묘지로 가는 오솔길에 서 있는 신도비는 1550년경에 이 묘가 조성됐음을 알려준다. 국립현충원보다 400년이 더 됐다는 얘기다.

 

창빈 안 씨는 누구일까? 창빈은 조선 14대 임금인 선조의 할머니, 연산군 5년에 경기도 안산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인 중종 2년 궁녀로 뽑혔다. 스무 살 때 중종의 총애를 입어 영양군, 덕흥군, 정신 옹주 등 21녀를 낳았고, 1549 5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는 정치적으로 혼란하던 시기였다. 중종이 죽고(1544), 다음 임금 인종이 즉위 1년도 안 된 31세의 나이에 죽자(1545), 인종의 이복동생 명종이 왕위에 오르는데, 그도 34세에 대를 이을 자식이 없이 죽는다(1567).

 

누가 왕이 될지 모르는 어수선한 정국에서 명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이 창빈 안 씨가 낳은 덕흥군의 셋째 아들인 하성군이다. 그가 바로 조선 14대 선조 임금이다.

 

창빈 안 씨의 처지에서는 손자가 임금이 된 것이다. 후궁의 손자가 임금이 되기는 조선 건국이래 처음이었다. 이후 임금은 모두 창빈의 후손이다. 어떻게 보면 이때부터의 조선은 창빈의 조선인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풍수적으로 봤을 때 창빈 안 씨 묘소가 현충원 안에서 가장 좋다는 이른바 () 자리에 해당하는 명당 중의 명당(明堂)이라는 점이다

 

▲ 창빈안씨 묘 앞에서 손창록 박사가 강의 후 수강생들과 한강 쪽을 바라보며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이금로 기자    

 

창빈 묘에 얽힌 풍수적 이야기는 이렇다. 154910월 창빈이 죽자 아들 덕흥군은 전남 장흥에 시신을 모셨다. 그런데 그곳이 풍수상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1년 만에 이장(移葬)을 결심한다.

 

지금도 이장이 쉽지 않지만, 당시엔 이장한다는 것은 새로 장례를 치르는 것과 같았다.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가는 까닭에 왕가에서도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덕흥군 이초는 저명한 풍수 지관(地官)들을 동원해 명당자리를 찾았고, 그곳이 지금의 창빈 묘역, 동작릉이다.

 

이장한 지 3년 만인 1552년 하성군이 태어났고, 1567년에 조선 14대 선조 임금이 됐다하성군이 임금이 되자 창빈 묘역은 그야말로 임금이 난 명당 터가 된 것이다.

 

할머니 묘의 발복으로 임금이 됐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조선 8도로 퍼졌다. 그렇지 않아도 선비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풍수설에 기름을 끼얹었다. 조선의 선비들이 낮에는 유교, 밤에는 풍수를 공부하고 토론했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사회 분위기가 이러한데, 화가(畫家)들의 눈에 이런 스토리가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이 18세기 중엽에 그린 '동작진(銅雀津)' 은 바로 지금의 현충원 일대가 배경이다. 좌우의 산이 마을을 감싸고, 그 앞으로 한강이 흐른다. 멀리 보이는 관악산이 든든하다. 명당의 조건을 두루 갖춘 곳으로, 당시 선비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터임을 보여준다

 

풍수 기운의 흐름이 조산(관악산) 주산(서달산) 현무정(장군봉) 내룡(국가유공자 묘역) (창빈 묘) 명당(일반 사병 묘역) 수구(현충원 정문) 객수(한강)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풍수에서는 산은 인물을 키우고, 물은 재물을 창출한다. (山主人水主財)’ 고 얘기한다. 풍수의 핵심 화두 중 하나다. 그런 측면에서도 창빈 묘역은 좋은 산(人物)과 생기 넘치는 물(財物)을 다 품어 안고 있는 명당(明堂)인 셈이다.

 

풍수적 관점에서 역대 대통령들과 국가유공자들이 혈 자리에 있는 청빈 안 씨를 호위하고 있는 형국(形局)이다. 왕을 낳고, (大統領)들이 쉬는 곳, 바로 현충원이고 동작릉이다.

 

 

국립현충원과 창빈안씨 동작릉은 관악산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한강을 만나는 지점에 아늑하게 펼쳐져 있다. 요즘 날씨도 좋고, 현충일도 다가오니 가족과 함께 산책 겸 다녀오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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